2020년 4월 11일 토요일

코로나 시대의 레슬링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중단된 이후로 레슬링을 거의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타 단체를 거의 보지를 않아서요. 그러는 와중에 업계 존망의 위기 속에서 여러 단체들이 무관중 경기로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기는 곧 기회라는 옛말을 증명하듯, 신선한 시도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눈에 띈 것은 3월 29일 프로레슬링 NOAH의 시오자키 고 대 후지타 카즈유키의 경기, 그리고 4월 4일 WWE레슬매니아의 언더테이커 대 AJ 스타일스 경기입니다. 프로레슬링의 상례와 너무나도 다른 이 두 경기는 서로 정반대 방향에으로 벽을 뚤고 나갑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소리"에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시오자키 대 후지타 경기의 전반 30분, 언제든 달려들 자세만을 취한채 두 레슬러가 상대를 노려볼 뿐이었던 그 30분이 많은 일본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무사물의 정취를 노렸다는 것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소위 '정중동' 속에서 검을 든채 미동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두 무사. 풀이 바람에 스쳐지나가는 소리만 나던중, 불현듯 달빛에 검광이 비치고 진검승부가 나며 한 무사는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 이런 모습이 얼마나 고증에 충실한지는 둘째치고 이런 서사가 그네들, 특히나 레슬링의 전통적인 일본인 팬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카메라 찰칵이는 소리, 타임 키퍼의 호명, 간간히 들려오는 레프리와 세컨드의 재촉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경기장을 지배하는 것은 정적입니다. 일본식 무사물에 비유컨대, 보통의 레슬링 시합이 영주와 관중들 앞에서 벌어지는 대낮의 어전 시합이라면, 무관중 경기장에서 두 레슬러가 벌이는 경기는 달밤처럼 어두운 관중석을 뒤로 한 정적 속의 경기입니다. 여러 색이 어우러진 모자이크보다도 단색의 평면이 더 꽉 차보일 수 있는 것처럼, 시오자키 대 후지타 경기는 그 정적을 통해 경기장을 메웠습니다.


언더테이커 대 AJ 스타일스의 경기는 루차 언더그라운드, 매트 하디가 딜리트 기믹을 통해 보인 여러 실험적 시도를 과감하게 스크린에 펼쳐냈습니다. 그 영화적인 연출도 연출이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또 한번 그 '소리'였습니다. 관중들의 반응이 부재한 자리를 채우는 것은 경기라는 틀 하에서도 여전히 부각되는 대사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배경음악이었습니다.

배경음악은 허구 세계의 구성요소입니다. 우리네들 삶에 비극은 허다하지만 그때마다 비장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던가 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입장씬은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며, 그렇기에 레슬링 경기에서 입장씬은 귀중합니다. 본 시합은 그런 발상을 한없이 늘인 연장입니다.

관중들의 성원과 해설이 사라진 캔버스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대사와 효과음, 그리고 배경음악입니다.언더테이커가 '작업'을 마친 것과 동시에 종소리가 울리는 그 세계는 이미 현실과는 일별한 세계이며, 이로써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는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재료로 이루어진 무언가임을 선언합니다.


변화가 없는 예술은 결국 조금씩 조금씩 스러져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 위기로 인해 레슬링계 역시 마찬가지로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만, 그런 한계 덕분에 이런 전위적 시도를 보는 것은 팬으로서 기쁜 일입니다.

(2020-04-05)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Mark"와 "Smark"

북미 레슬링 팬덤의 은어 중 "Mark"가 있습니다. 대략 '스토리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순진한 팬들'을 일컫는 비하 표현입니다. 동사 활용으로 "marking out"이 있습니다. ("헐. 나 타나하시 직접 보고서 mark out 했어!")

"Smark"는 "Smart mark"의 준말입니다. 요컨대 지들은 똑똑하다는 얘기입니다. 레슬링 캐릭터와 레슬러를 구분할줄 알고, 스토리와 백스테이지 상황을 구분할줄 알고, 케이페이브를 보다 '어른스러운' 관점에서 즐길 수 있다는거죠.


사실 두 용어 모두 본래는 멸칭이기는 합니다만, 맥락을 떠나서 위 두 명칭은 프로레슬링 팬들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 면모 모두를 즐길 수 있는게 프로레슬링 팬으로서 즐거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1월 5일 열린 레슬킹덤14 2일차는 충격적인 결말로 끝났습니다. 지난 몇 년간 팬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이 그 직전에, 정말 바로 그 직전에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도쿄돔 메인 이벤트의 승자인 나이토 테츠야는 결국 마지막 "로스 인고베르나블레스 데! 하! 폰!"을 끝내지 못한채 KENTA의 난입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영광스런 하나미치를 걸어나가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런 XXX!"

먹먹한 심정으로 레슬킹덤을 시청하던 팬들 모두가 욱하면서 토해냈을 말입니다. 물론 그 대상은 그 빌어먹을 KENTA입니다.

하지만 우린 케이페이브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이건 모두 짜여진 대본대로 입니다. 그러면 욕을 먹어야할 사람은 퍼포머가 아닌 그 배후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게도 개XX!"


하지만 우린 또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도쿄돔 데하폰!'이 이루어지는 순간 '로스 인고베르나블레스 데 하폰'은 더이상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요. 이는 일찌기 케니 오메가가 WOR에서 넌지시 언급하기도 한 신일본 수뇌진의 평가이기도 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 LIJ는 이걸로 2020년도 거뜬하겠구나. 신일본 수뇌진은 LIJ 머천다이즈가 2020년에도 잘 팔릴거라고 전망하는구나, 등등요.

이런 점에서 우리는 팬들이 바라는 바로 그 스토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여전히 찜찜합니다.


"나는 나이토가 끝내 한을 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단 말이야."


근데 이때 "나이토"가 누군가요? 도쿄 아다치 구에서 태어난 37세 나이토 테츠야 씨인가요? 아니면 "스타 더스트 지니어스"였으며 "제어불능의 카리스마"가 된 '나이토 테츠야'인가요?

저희는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의 주인공을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를 보며 안타까워하지는 않습니다. 


프로레슬링은 묘합니다. 저흰 나이토 테츠야 씨와 레슬러 '나이토 테츠야'가 다르다는걸 알지만, 신일본 팬클럽의 일원이었으며 무토 케이지 그리고 타나하시 히로시를 존경했던 소년 나이토가 자라난 바로 그 나이토 테츠야의 역사를 알고 있기에 그와 '나이토 테츠야'를 겹쳐봅니다. 그래서 안타까워하고, 분노합니다. 그리고 약이 올라서 나이토 테츠야의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따라갈 것입니다



케이페이브가 깨진 시점에서 프로레슬링은 뭘까요? 많은 이들이 그 전망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그리고 실제로도 그 때문에 많은 팬들이 떠나가고 있는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케이페이브를 알면서, 현실의 레슬러와 스토리의 '레슬러'를 알면서 그 사이를 넘나드는 덕분에 우리는 Mark와 Smark라는 두 면모를 왔다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프로레슬링이야말로 제공해줄 수 있는 바로 그런 예술적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추상적인 관점에서 레슬킹덤의 결말을 보고 느낀 저 자신의 감정을 차근히 분석해보는 것 또한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도락이었습니다 


그치만 분명히 이 글을 올리고 어느 순간 부지불식에 저는 다시 한번 되뇌일게 분명합니다


"아, XX. 히데오 이타미 XXX."

(2020/01/05)

2019년 7월 9일 화요일

신일본 G1 클라이맥스 28 2일차 (2018/7/15) 직관 후기

1. 시합 예매를 하기까지


일전에 G1 예매 관련 질문글을 한번 올렸다가 이후 당초 예정했던 표 예매에 실패했다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끝내 일정을 바꿔서 2일차인 7월 15일 흥행을 예매하였습니다.


관련하여 앞으로도 신일본 예매 관련 관심있으신 분들이 꼭 참고하셨으면 하는 점은 예매 자체도 엄청 빠르게 이루어질 뿐더러, 보다 결정적으로는 로손 등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결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마스터카드로 그간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 해외 직구를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유독  로손에서는 결제가 되질 않아 끝내 몇 만원 웃돈을 주고 결제 대행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ㅠ 꼭 예매 이전에 미리 카드 등록 등을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2. 시합 시작 전


시합 장소는 오오타 구 구립 체육관이었습니다. 도쿄 남쪽?에 소재하고 있으므로 하네다 공항을 이용하실 경우 바로 근처에 있기에 접근하시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 숙소비 총액 합계보다도 비싼 돈을 주고 구한 입장권 ....



날씨가 무지 더웠습니다만, 여차저차 들어가니 경기장이 시원하더군요. 대략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정도 전쯤에 입장하여 상품 구매 등을 구경하고 이리저리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품 판매 이외 경기 전 행사로는 타구치 저팬 촬영회 및 롯폰기 3k/쥬스 로빈슨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둘다 모종의 사전 예약? 상품 판매? 등이 필요했기에 참가는 못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타구치 류스케가 생각보다 훨씬 몸집이 큰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다른 한편 회장 곳곳에서 화면에서만 보던 영 라이온 선수들이 계속 이것저것 일 때문인지 관객들 틈에서 돌아다니던게 보여 이색적이었습니다.


관객들 층은 남녀노소 정말 다행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시이 티를 입은 아주머니, 잭 세이버 주니어 티를 입은 남학생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역시 절대 다수는 로스 인고베르나블레스 데 하폰 굿즈를 착용한 것을 보고 새삼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경기 시작 약 20분 전부터 거의 부동 자세로 경기장을 지키는게 인상적이었던 우에무라 유야와 츠지 요타



그리고 이윽고 관객석이 빼곡히 차고, 암전이 되면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신일본 공식 인트로 테마인 The Score에 맞춰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하며 흥행이 시작했습니다 ... !


3. 흥행 감상


제 1시합: 행맨 페이지, 체이스 오웬스 vs 마이클 엘긴, 우미노 쇼타

신일본 본대 쪽으로 거의 응원이 일방적인 시합이었습니다. 우미노의 근성 연출이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엘긴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호감을 갖기는 힘들어 혼자 꿋꿋이 "Let's go Adam!"을 외쳤습니다 ...


제2시합: 요시하시, SHO vs EVIL, BUSHI

의외로 요시하시가 호응을 받아서 놀랐고, 다른 한편 실제로 보니 SHO와 요시하시 간에 확연히 체구차가 나서 놀랐습니다. 근래 좋아하는 SHO가 탭아웃으로 져서 아쉬웠습니다만, 무난하게 좋은 시합이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무사 형을 응원합시다 ... ?



제3시합: 스즈키 미노루 & 엘 데스페라도 VS 마카베 토우기 & 토아 헤나레

스즈키군은 역시나 인기가 좋더군요. 제 옆자리 부부 팬도 "카제 니 나레!" 시점에 같이 스즈키군 깃발을 펼치셨습니다. 다만 경기 중에는 시종 일관 본대 쪽으로 응원이 집중되었습니다. 헤나레 챈트가 많이 나오더군요. 마카베도 역시 현지에서 인기가 많구나 싶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스즈키의 전매특허인 빠르게 돌아서 슬리퍼 홀드가 나오질 않았던 것 같아서 살짝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장외 격투 후 TV에선 안 잡히는 시점에서 마카베가 관객들을 안심시키는 것을 보고 재밌었습니다.





제4시합: 배드 럭 파레 & 탕가 로아 VS 오카다 카즈치카 & 게도







과연 IWGP를 잃은 레인메이커는 어디로 흘러가는걸까요 .... 방송에서 잘 잡혔는지는 모르겠는데 묘하게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입장하고는 경기 중에는 "스쿠비두비두~"하면서 다이빙 크로스바디를 하는 등 수상쩍은 모습을 한 오카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뒤 뒤늦게 탕가 로아가 "뭐가 스쿠비두비두냐 이 멍청아!" 하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의외로 경기장에서 이렇게 선수들이 경기 중에 하는 말 하나하나가 잘 들리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제5시합: 제이 화이트 & YOH VS 타나하시 히로시 & 데이비드 핀레이




The ACE의 엔트런스를 보며 챈트를 한 것으로 소원성취 하나 완료했음.



스토리 상으로 재밌는 시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이 화이트는 벨트를 잃은 후에 도리어 좋은 힐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흥행 중에 거의 유일하게 야유를 독점한 선수였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YOH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뭐 입장 시점부터 챈트를 불러모은 타나하시야 말할 것도 없겠죠.




제6시합 (G1 1차전): 야노 토오루 VS 이시이 토모히로


거의 일방적으로 야노 응원이 나와서 재밌었습니다. 경기 전 복선부터 마지막 반전까지, 흠 잡을데가 없는 완결성이 좋은 매치였습니다. 고민 끝에 이시이 티셔츠는 끝내 사질 않았는데 후회가 좀 남네요 ㅠㅠ



제7시합 (G1 2차전): 타마 통가 VS 쥬스 로빈슨

양쪽 다 외국인 선수여서 그런지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관객들이 상당히 조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쥬스가 좋은 연출로 점점 호응을 불러모으고, 타마 통가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타마 통가가 "You're getting away from me, huh?"라고 하면서 쥬스를 잘 도발했던 것 같은데 주변 관객들은 '뭐라는거지?'라고 했던 것 같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쥬스를 웅원하는 가운데 경기장 한 쪽에서 꿋꿋이 남정네 한 무리가 "타마~!"를 외쳐서 재밌었습니다.



제8시합 (G1 3차전): SANADA  VS 고토 히로오키



아이고 잘 생겼다.


고토 인기가 좋은걸 보고 새삼 놀랐습니다. 걸개도 여럿 걸려 있었구요. 제 옆옆자리 아주머니가 계속 "고토상~!"을 외치는 가운데 저는 꿋꿋이 사나다를 연호했습니다. 사나다의 운동 능력은 역시나 대단하더군요. 직관 빨인지는 몰라도 제가 지금까지 본 고토 경기 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9시합 (G1 4차전): 잭 세이버 Jr. VS 이부시 코우타

엔트런스 때부터 일방적인 챈트가 나온 제2인. 제 옆자리 아저씨가 경기 내내 흥분하여 이부시를 응원한게 재밌었습니다. 잭 세이버가 신기한 서브미션을 할 때마다 "괴상허네"를 연발하고, 경기 도중 한번은 이부시의 오버헤드 킥인가를 잭이 피하자 강한 간사이 지방 사투리로 "그것도 못 받아내냐, 이 자슥아!"라고 외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재밌는 시합이었습니다만, 아래 이야기할 이유 때문에라도 새삼 이런 시합은 꼭 직관이 아니라도 화면으로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시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제10시합 G1 클라이맥스 B블럭 예선전 30분 한판 승부 나이토 테츠야 VS 케니 오메가

뭐 명시합이었습니다. 할 말이 없죠. 승부가 나자 옆자리 아저씨가 불쑥 저한테 악수를 청했더랍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만 전반부-중반부 범프를 줄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니가 장외 다이브를 한 스팟에서 옆자리 부부가 "지금 후두부 다친거 아냐?" 하면서 수근수근거리는걸 보고 저도 좀 조마조마했습니다.



케니도 응원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나이토 응원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옆옆자리 아주머니도 계속 "텟쨩, 힘내!"라고 외치다가 결국 시무룩해지셨죠. 개인적으로는 케니가 경기후 일본어로 프로모하는걸 보고 '영어로 했다간 야유가 나왔을지도 모르겠군'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4. 흥행 후

흥행이 끝나고 정리하고 나오니 사람들이 다들 한 쪽에 진을 치고 있더군요. 뭔가 싶었는데 선수들이 버스를 타는걸 마중하는 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쥬스 로빈슨 등이 나오는걸 보고 잠시 있다가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걷다가 한 쪽에서 신일본 월드 영어 해설자 던 칼리스가 택시를 타려던걸 발견했습니다! 일본 팬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 얼른 달려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대충 짧게 이런 대화를 나눈 것 같아요.

나: 헉 던 칼리스 님.
던 칼리스: 오, 안녕!
나: 헐, 저 한국 팬이에요. 님 해설 항상 잘 듣고 있고 항상 감사합니다!
던 칼리스: 오, 고마워, 브로. (피스트 범프 함) 너 도쿄에 사는거야?
나: 아녀. 저 여행으로 온거에여. 님 보러 온거나 다름없음 ㅋㅋㅋ
던 칼리스: ㅋㅋ 고마워. 나중에 또 보자.
나: ㅇㅇㅇ

나름 마무리까지 이렇게 멋지게 제 첫 레슬링 직관을 마쳤습니다.



5. 총평


  • 나름 큰 맘 먹고 시도한 첫 레슬링 직관이었는데 120% 만족했습니다. 새삼 느낀건데 직관에서는 박력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링 포스트에 한번 부딪히는 것만해도 박력이 장난이 아니고, 슬램 등 바닥 펌브를 한번 취할 때마다 4000명 가까이가 들어가는 경기장 전체에 충격이 오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해설이 없으면 집중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해설이 있었다면 방해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반면에 서브미션이 주가 되는 매치는 어쩌면 그런 면에서 직관의 효력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잭 세이버의 섬세한 기술 구사 등은 거리가 멀면 잘 안 보일테니까요.
  • 다른 단체는 몰라도 최소한 신일본의 경우 흥행의 초점은 직관 관객이라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예를 들어 카메라에선 전혀 비치지 않을 곳에서 적절히 셀링을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시였습니다.
  • 신일본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 또다른 점은 새삼 느낀 관객들의 다양성이었습니다. 당장 옆자리 부부만 해도 오래 전부터 레슬링을 봐온 것 같은 아저씨가 최근 나이토 등을 보며 라이트 팬이 된 부인을 데려와서 여러 장면을 설명해주고 있었고, 관객들도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부터 시작하여 친구들끼리 온 10대 남학생들, 대충 여대생 쯤으로 보이는 팬들 등 아주 다양했습니다. 이렇게 팬을 다각화하는데 성공한 점은 분명 단체 경영에 긍정적인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2019/07/19)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한 초등학생의 '아스카'를 주제로 한 '여성의 역사' 발표

트위터 이름 Steve Sauselein이 트위터에 올린 영상이 화제입니다 (WWE 링크).


'여성의 역사의 달'을 맞아 초등학교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Steve의 딸이 현 WWE 소속 레슬러 아스카를 주제로 삼아 발표한 것의 녹화본이 올라와 WWE 임직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녹화본은 발표 중간부터 시작하는데 대충 내용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스카는 오사카 대학에서 졸업했고, 피겨 스케이팅 경험이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닌텐도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아스카가 유명한 까닭은 510일 동안 NXT 위민즈 타이틀을 방어했으며, 첫 영성 로얄럼블에서 우승했고, 2015년부터 한번도 패하지 않는 WWE 역사상의 기록을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스카를 존경하는 이유는 사상 최초로 여성 로얄럼블에서 우승했고 기록적인 연승을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자 또한 남자에 뒤지지 않는 레슬링을 할 수 있다는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아스카에 관해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상을 본 아스카는 직접 트위터로 "(심쿵)(눈물)(하트) 저의 사랑을 드려요. 저의 사랑을 드려요 #Love"라고 답멘션을 보냈습니다.



WWE를 보지 않는 입장에서 좋은 워커인 카나를 잃은 것은 참 아쉬운 일이지만, 이렇게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영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레슬러가 생긴 것은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03/25)

폴 헤이먼 : '코디의 행보를 보면 스티브 오스틴이 연상된다' (2018/4/2)

NBC Sports에 올라온 폴 헤이먼의 인터뷰를 읽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최근 코디 로즈의 성공적인 행보에 관한 폴 헤이먼의 언급이 통찰력이 있는 것 같아 한번 번역하여 올려봅니다.

                                                                             
                                                                                


인터뷰어:

코디 로즈는 스타더스트라는 역할에 “고착되었던” 바 있었습니다. 대신 그는 회사를 떠나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메인 이벤트 급으로 성장했죠. 지금 메인 로스터에 있는 사람 중에서 이처럼 회사 밖에서 빛을 볼 수 있을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폴 헤이먼:


있잖아, 난 그렇게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인터뷰어:

흥미롭군요 ....


폴 헤이먼: 

내가 코디를 보면 WCW에서 나왔을 때 직후의 스티브 오스틴을 연상돼. 스티브도 스스로를 찾아내야만 했다고.  필라델피아에서 시합이 끝나고 그 개빡쳤고, 피곤하고, 상처입었던 오스틴한테 내가 새벽 5시에 카메라를 들이댄 바로 그때, 스티브 오스틴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으로 뻗어나간 그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비로소 찾아낸 겁니다.

코디도 똑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찾아낸거죠. 스스로가 바라는 자신을 WWE에서 펼쳐낼 수 없었고, 그 울분 덕분에 회사 밖에서 높이 뻗어나간거라고. 아마 회사 안에선 그런걸 찾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WWE를 떠나면서도 스스로의 비전을 붙들어 그 내면 속에 잠들어있던 어필 포인트를 찾아낸 코디에게 격려의 말을 보냅니다.

지금 WWE 안에도 그렇게 틀을 깨고 나갈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항상 절반의 싸움은 적시에 찾아온다고 봐요. 여기에 있는 한, 그게 작가진이 되었든, 총괄 연출자 케빈 던이 되었든, 빈스 맥맨이 되었든, 폴 레베스크가 되었든, 그 누구라도 결정권이 있는 사람한테 설명을 해낼 수 있는데 달린거지. 이게 당신네 회사가 나랑 같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이야.

그래서 종종 문제는 때와 장소랑 사람이 잘 맞아떨어져야 풀리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좋고. 고용주한테 설득을 하는 것처럼요. "이게 당신이 날 뽑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똑같아요. 비즈니스지.

빈스 맥맨은 싫어하겠지만 이건 착취 산업이야. 박스 오피스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뽑아내기 위해 개인의 삶 그 이상을 뽑아내 먹는거지.

자기 삶에 불만족스러운 퍼포머가 있다면 그때 해야할 일은 결정권자한테 스스로를 다르게 내보이는거에요. 그 결정권자가 "이렇게 하면 이 친구로 돈을 더 벌여들일 수 있겠군"이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그래서 회사를 나가는게 코디 로즈한테는 통했지만 모두한테 통하는건 아닙니다. 이미 여기 발을 걸쳐놨다면, 그 기회를 써먹어요 좀! 소통의 창구는 열려 있고, 계약은 이미 박혀있어요. 그니까 질러. 어떻게 당신 데리고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말하라고. 윗대가리들은 경청할 겁니다! 이건 돈을 벌려는 사업이라고요!




                                                                             


기사 주소: http://sports.nbcsports.com/2018/04/02/paul-heyman-cody-rhodes-found-himself-in-the-same-way-stone-cold-steve-austin-did-when-he-left-wcw/

위 내용 말고도 우소즈, 로먼 레인즈, 브록 레스너에 관한 언급도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꿈의 투샷" 미사와 미츠하루, 무토 케이지 숏 인터뷰 (1999년)





【夢のツーショット実現!!】 三沢光晴 & 武藤敬司 「三沢は俺の恋人」

                                                                                   



- 무토 씨 전일본 프로레스 새로운 사장이 계신데요.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무토: 이야, 선수로서도 힘든데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 사장이 되선거잖아요? 정말로, 정말로 힘든 입장에 서신거죠. 그래도 제 라이벌이니까, 제 멋대로 라이벌로 삼았지만서도 힘내줬으면 좋겠습니다.


- 미사와씨, 라이벌이라고 불렸는데요.

미사와: 아, 기쁘군요. 그렇게 생각해주셨다니.


- 미사와씨에게 있어서 무토씨는?

미사와: 역시 어릴 적부터 많이 비교가 됐었죠. 역시 오래전 부터 의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바바 씨가 돌아가셨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라는 생각을 품고 계신가요?

무토: 아, 저요? 아니 입장이 다르죠. 저는 그냥 일개 레슬러니까요. 그래도 링에서만큼은 전일본에 지지 않게끔 노력할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미사와: 아, 뭐 저도 링 위에서는 일개 레슬러니까요.


- 두 분이 맞붙는 걸 상상한 팬들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느끼시나요?

미사와: 음, 팬 분들의 바람을 이뤄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역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필요성이 있겠다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무토: 저한테는 뭐라고 해야하나, 그 티비 드라마에서 부모가 멋대로 약혼을 시켜서 한번도 보지도 못한 남자한테 사랑을 품게 되는 그런 여심 있잖아요. 그런 기분인것 같습니다.


- 미사와 씨가 그러니까 그 보지도 못한 남자인건가요?

무토: 그 남자라고 해도 레슬러로서요.


- 굉장한 러브콜이네요.

미사와: 그렇군요!

무토: 아니, 그 제가 오카마는 아니구요?

                                                                                                                                             

뭔가 이 두 사람의 미래의 궤적을 생각해보니 얄궂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스타파 알리는 어째서 "전형적인 중동 악역"을 맡지 않는가?

WWE 205 Live 소속의 슈퍼스타 무스타파 알리의 인터뷰 꼭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번역본을 올립니다. 단체를 떠나 레슬링 업계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twitter.com/Neumannthehuman/status/982062889203838977?s=20
                                                                     


무스타파 알리는 어째서 일찍부터 극악한 “전형적인 중동인”을 연기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건 제가 16살 때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로 돌아갑니다. 만약 동남아, 중동 출신이거나 혹은 어쨌든 “중동인”으로 묘사된다면 너는 곧 나쁜 놈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죠. 그런 점을 알았기 때문에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고 저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 레슬링을 시작했을 때 전 제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루차도르 행세를 했습니다. 그니까 멕시코 레슬러로 말이죠. 그렇게 몇 년을 버텼습니다. 그러다보니 결국엔 그렇게 부킹을 잘 받지 못했고 일이 막히면서 갈팡질팡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손목 골절로 인해 반년을 쉬었죠. 그러던 동안에 친구랑 거듭 이야기를 하다 나온건 결국 이런 얘기였습니다. “너가 중동인 캐릭터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이름도 알리고 부킹도 잘 받을거야. 한번 해봐.” 결국 고민에 고민 끝에 저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고 곧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프린스 무스타파 알리”가 되었습니다. 나쁜 놈이었죠. 그리고 그게 먹혔습니다! 아, 그렇게 돌아오고 나니까 이 바닥에서 완전 핫한 선수가 되고 부킹도 쏟아지더군요. 회사에서 저한테 항공 티켓을 끊어준 것은 그게 처음이었습니다. 이미 검증된 공식이었고, 증명이 되었고, 잘 먹힌거죠. 그렇지만 전 그게 끔찍히 싫었습니다. 매 순간마다요. 나쁜 놈이 되는 것도 싫었고 그런 관념에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싫었습니다.



자주 하는 얘기입니다만, 전 제가 악역을 맡던 때 가운데서도 이 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경기 도중 무심코 관중 속에 있던 한 어린이를 봤을 때 그 어린이의 시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어린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마치 방어 태세를 취하듯 한발 뒤로 물러섰던겁니다. “아, 나는 지금 저 아이한테 나와 같은 사람은 증오하는게 마땅하다는걸 가르쳐준건가? 내가 지금 한게 바로 그런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날로 저는 그런 모습을 그만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