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9일 화요일

신일본 G1 클라이맥스 28 2일차 (2018/7/15) 직관 후기

1. 시합 예매를 하기까지


일전에 G1 예매 관련 질문글을 한번 올렸다가 이후 당초 예정했던 표 예매에 실패했다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끝내 일정을 바꿔서 2일차인 7월 15일 흥행을 예매하였습니다.


관련하여 앞으로도 신일본 예매 관련 관심있으신 분들이 꼭 참고하셨으면 하는 점은 예매 자체도 엄청 빠르게 이루어질 뿐더러, 보다 결정적으로는 로손 등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결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마스터카드로 그간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 해외 직구를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유독  로손에서는 결제가 되질 않아 끝내 몇 만원 웃돈을 주고 결제 대행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ㅠ 꼭 예매 이전에 미리 카드 등록 등을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2. 시합 시작 전


시합 장소는 오오타 구 구립 체육관이었습니다. 도쿄 남쪽?에 소재하고 있으므로 하네다 공항을 이용하실 경우 바로 근처에 있기에 접근하시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 숙소비 총액 합계보다도 비싼 돈을 주고 구한 입장권 ....



날씨가 무지 더웠습니다만, 여차저차 들어가니 경기장이 시원하더군요. 대략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정도 전쯤에 입장하여 상품 구매 등을 구경하고 이리저리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품 판매 이외 경기 전 행사로는 타구치 저팬 촬영회 및 롯폰기 3k/쥬스 로빈슨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둘다 모종의 사전 예약? 상품 판매? 등이 필요했기에 참가는 못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타구치 류스케가 생각보다 훨씬 몸집이 큰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다른 한편 회장 곳곳에서 화면에서만 보던 영 라이온 선수들이 계속 이것저것 일 때문인지 관객들 틈에서 돌아다니던게 보여 이색적이었습니다.


관객들 층은 남녀노소 정말 다행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시이 티를 입은 아주머니, 잭 세이버 주니어 티를 입은 남학생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역시 절대 다수는 로스 인고베르나블레스 데 하폰 굿즈를 착용한 것을 보고 새삼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경기 시작 약 20분 전부터 거의 부동 자세로 경기장을 지키는게 인상적이었던 우에무라 유야와 츠지 요타



그리고 이윽고 관객석이 빼곡히 차고, 암전이 되면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신일본 공식 인트로 테마인 The Score에 맞춰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하며 흥행이 시작했습니다 ... !


3. 흥행 감상


제 1시합: 행맨 페이지, 체이스 오웬스 vs 마이클 엘긴, 우미노 쇼타

신일본 본대 쪽으로 거의 응원이 일방적인 시합이었습니다. 우미노의 근성 연출이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엘긴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호감을 갖기는 힘들어 혼자 꿋꿋이 "Let's go Adam!"을 외쳤습니다 ...


제2시합: 요시하시, SHO vs EVIL, BUSHI

의외로 요시하시가 호응을 받아서 놀랐고, 다른 한편 실제로 보니 SHO와 요시하시 간에 확연히 체구차가 나서 놀랐습니다. 근래 좋아하는 SHO가 탭아웃으로 져서 아쉬웠습니다만, 무난하게 좋은 시합이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무사 형을 응원합시다 ... ?



제3시합: 스즈키 미노루 & 엘 데스페라도 VS 마카베 토우기 & 토아 헤나레

스즈키군은 역시나 인기가 좋더군요. 제 옆자리 부부 팬도 "카제 니 나레!" 시점에 같이 스즈키군 깃발을 펼치셨습니다. 다만 경기 중에는 시종 일관 본대 쪽으로 응원이 집중되었습니다. 헤나레 챈트가 많이 나오더군요. 마카베도 역시 현지에서 인기가 많구나 싶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스즈키의 전매특허인 빠르게 돌아서 슬리퍼 홀드가 나오질 않았던 것 같아서 살짝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장외 격투 후 TV에선 안 잡히는 시점에서 마카베가 관객들을 안심시키는 것을 보고 재밌었습니다.





제4시합: 배드 럭 파레 & 탕가 로아 VS 오카다 카즈치카 & 게도







과연 IWGP를 잃은 레인메이커는 어디로 흘러가는걸까요 .... 방송에서 잘 잡혔는지는 모르겠는데 묘하게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로 입장하고는 경기 중에는 "스쿠비두비두~"하면서 다이빙 크로스바디를 하는 등 수상쩍은 모습을 한 오카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뒤 뒤늦게 탕가 로아가 "뭐가 스쿠비두비두냐 이 멍청아!" 하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의외로 경기장에서 이렇게 선수들이 경기 중에 하는 말 하나하나가 잘 들리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제5시합: 제이 화이트 & YOH VS 타나하시 히로시 & 데이비드 핀레이




The ACE의 엔트런스를 보며 챈트를 한 것으로 소원성취 하나 완료했음.



스토리 상으로 재밌는 시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이 화이트는 벨트를 잃은 후에 도리어 좋은 힐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흥행 중에 거의 유일하게 야유를 독점한 선수였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YOH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뭐 입장 시점부터 챈트를 불러모은 타나하시야 말할 것도 없겠죠.




제6시합 (G1 1차전): 야노 토오루 VS 이시이 토모히로


거의 일방적으로 야노 응원이 나와서 재밌었습니다. 경기 전 복선부터 마지막 반전까지, 흠 잡을데가 없는 완결성이 좋은 매치였습니다. 고민 끝에 이시이 티셔츠는 끝내 사질 않았는데 후회가 좀 남네요 ㅠㅠ



제7시합 (G1 2차전): 타마 통가 VS 쥬스 로빈슨

양쪽 다 외국인 선수여서 그런지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관객들이 상당히 조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쥬스가 좋은 연출로 점점 호응을 불러모으고, 타마 통가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타마 통가가 "You're getting away from me, huh?"라고 하면서 쥬스를 잘 도발했던 것 같은데 주변 관객들은 '뭐라는거지?'라고 했던 것 같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쥬스를 웅원하는 가운데 경기장 한 쪽에서 꿋꿋이 남정네 한 무리가 "타마~!"를 외쳐서 재밌었습니다.



제8시합 (G1 3차전): SANADA  VS 고토 히로오키



아이고 잘 생겼다.


고토 인기가 좋은걸 보고 새삼 놀랐습니다. 걸개도 여럿 걸려 있었구요. 제 옆옆자리 아주머니가 계속 "고토상~!"을 외치는 가운데 저는 꿋꿋이 사나다를 연호했습니다. 사나다의 운동 능력은 역시나 대단하더군요. 직관 빨인지는 몰라도 제가 지금까지 본 고토 경기 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9시합 (G1 4차전): 잭 세이버 Jr. VS 이부시 코우타

엔트런스 때부터 일방적인 챈트가 나온 제2인. 제 옆자리 아저씨가 경기 내내 흥분하여 이부시를 응원한게 재밌었습니다. 잭 세이버가 신기한 서브미션을 할 때마다 "괴상허네"를 연발하고, 경기 도중 한번은 이부시의 오버헤드 킥인가를 잭이 피하자 강한 간사이 지방 사투리로 "그것도 못 받아내냐, 이 자슥아!"라고 외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재밌는 시합이었습니다만, 아래 이야기할 이유 때문에라도 새삼 이런 시합은 꼭 직관이 아니라도 화면으로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시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제10시합 G1 클라이맥스 B블럭 예선전 30분 한판 승부 나이토 테츠야 VS 케니 오메가

뭐 명시합이었습니다. 할 말이 없죠. 승부가 나자 옆자리 아저씨가 불쑥 저한테 악수를 청했더랍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만 전반부-중반부 범프를 줄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니가 장외 다이브를 한 스팟에서 옆자리 부부가 "지금 후두부 다친거 아냐?" 하면서 수근수근거리는걸 보고 저도 좀 조마조마했습니다.



케니도 응원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나이토 응원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옆옆자리 아주머니도 계속 "텟쨩, 힘내!"라고 외치다가 결국 시무룩해지셨죠. 개인적으로는 케니가 경기후 일본어로 프로모하는걸 보고 '영어로 했다간 야유가 나왔을지도 모르겠군'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4. 흥행 후

흥행이 끝나고 정리하고 나오니 사람들이 다들 한 쪽에 진을 치고 있더군요. 뭔가 싶었는데 선수들이 버스를 타는걸 마중하는 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쥬스 로빈슨 등이 나오는걸 보고 잠시 있다가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걷다가 한 쪽에서 신일본 월드 영어 해설자 던 칼리스가 택시를 타려던걸 발견했습니다! 일본 팬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 얼른 달려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대충 짧게 이런 대화를 나눈 것 같아요.

나: 헉 던 칼리스 님.
던 칼리스: 오, 안녕!
나: 헐, 저 한국 팬이에요. 님 해설 항상 잘 듣고 있고 항상 감사합니다!
던 칼리스: 오, 고마워, 브로. (피스트 범프 함) 너 도쿄에 사는거야?
나: 아녀. 저 여행으로 온거에여. 님 보러 온거나 다름없음 ㅋㅋㅋ
던 칼리스: ㅋㅋ 고마워. 나중에 또 보자.
나: ㅇㅇㅇ

나름 마무리까지 이렇게 멋지게 제 첫 레슬링 직관을 마쳤습니다.



5. 총평


  • 나름 큰 맘 먹고 시도한 첫 레슬링 직관이었는데 120% 만족했습니다. 새삼 느낀건데 직관에서는 박력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링 포스트에 한번 부딪히는 것만해도 박력이 장난이 아니고, 슬램 등 바닥 펌브를 한번 취할 때마다 4000명 가까이가 들어가는 경기장 전체에 충격이 오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해설이 없으면 집중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해설이 있었다면 방해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반면에 서브미션이 주가 되는 매치는 어쩌면 그런 면에서 직관의 효력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잭 세이버의 섬세한 기술 구사 등은 거리가 멀면 잘 안 보일테니까요.
  • 다른 단체는 몰라도 최소한 신일본의 경우 흥행의 초점은 직관 관객이라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예를 들어 카메라에선 전혀 비치지 않을 곳에서 적절히 셀링을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시였습니다.
  • 신일본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 또다른 점은 새삼 느낀 관객들의 다양성이었습니다. 당장 옆자리 부부만 해도 오래 전부터 레슬링을 봐온 것 같은 아저씨가 최근 나이토 등을 보며 라이트 팬이 된 부인을 데려와서 여러 장면을 설명해주고 있었고, 관객들도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부터 시작하여 친구들끼리 온 10대 남학생들, 대충 여대생 쯤으로 보이는 팬들 등 아주 다양했습니다. 이렇게 팬을 다각화하는데 성공한 점은 분명 단체 경영에 긍정적인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2019/07/19)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한 초등학생의 '아스카'를 주제로 한 '여성의 역사' 발표

트위터 이름 Steve Sauselein이 트위터에 올린 영상이 화제입니다 (WWE 링크).


'여성의 역사의 달'을 맞아 초등학교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Steve의 딸이 현 WWE 소속 레슬러 아스카를 주제로 삼아 발표한 것의 녹화본이 올라와 WWE 임직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녹화본은 발표 중간부터 시작하는데 대충 내용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스카는 오사카 대학에서 졸업했고, 피겨 스케이팅 경험이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닌텐도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아스카가 유명한 까닭은 510일 동안 NXT 위민즈 타이틀을 방어했으며, 첫 영성 로얄럼블에서 우승했고, 2015년부터 한번도 패하지 않는 WWE 역사상의 기록을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스카를 존경하는 이유는 사상 최초로 여성 로얄럼블에서 우승했고 기록적인 연승을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자 또한 남자에 뒤지지 않는 레슬링을 할 수 있다는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아스카에 관해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상을 본 아스카는 직접 트위터로 "(심쿵)(눈물)(하트) 저의 사랑을 드려요. 저의 사랑을 드려요 #Love"라고 답멘션을 보냈습니다.



WWE를 보지 않는 입장에서 좋은 워커인 카나를 잃은 것은 참 아쉬운 일이지만, 이렇게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영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레슬러가 생긴 것은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03/25)

폴 헤이먼 : '코디의 행보를 보면 스티브 오스틴이 연상된다' (2018/4/2)

NBC Sports에 올라온 폴 헤이먼의 인터뷰를 읽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최근 코디 로즈의 성공적인 행보에 관한 폴 헤이먼의 언급이 통찰력이 있는 것 같아 한번 번역하여 올려봅니다.

                                                                             
                                                                                


인터뷰어:

코디 로즈는 스타더스트라는 역할에 “고착되었던” 바 있었습니다. 대신 그는 회사를 떠나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메인 이벤트 급으로 성장했죠. 지금 메인 로스터에 있는 사람 중에서 이처럼 회사 밖에서 빛을 볼 수 있을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폴 헤이먼:


있잖아, 난 그렇게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인터뷰어:

흥미롭군요 ....


폴 헤이먼: 

내가 코디를 보면 WCW에서 나왔을 때 직후의 스티브 오스틴을 연상돼. 스티브도 스스로를 찾아내야만 했다고.  필라델피아에서 시합이 끝나고 그 개빡쳤고, 피곤하고, 상처입었던 오스틴한테 내가 새벽 5시에 카메라를 들이댄 바로 그때, 스티브 오스틴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으로 뻗어나간 그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비로소 찾아낸 겁니다.

코디도 똑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찾아낸거죠. 스스로가 바라는 자신을 WWE에서 펼쳐낼 수 없었고, 그 울분 덕분에 회사 밖에서 높이 뻗어나간거라고. 아마 회사 안에선 그런걸 찾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WWE를 떠나면서도 스스로의 비전을 붙들어 그 내면 속에 잠들어있던 어필 포인트를 찾아낸 코디에게 격려의 말을 보냅니다.

지금 WWE 안에도 그렇게 틀을 깨고 나갈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항상 절반의 싸움은 적시에 찾아온다고 봐요. 여기에 있는 한, 그게 작가진이 되었든, 총괄 연출자 케빈 던이 되었든, 빈스 맥맨이 되었든, 폴 레베스크가 되었든, 그 누구라도 결정권이 있는 사람한테 설명을 해낼 수 있는데 달린거지. 이게 당신네 회사가 나랑 같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이야.

그래서 종종 문제는 때와 장소랑 사람이 잘 맞아떨어져야 풀리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좋고. 고용주한테 설득을 하는 것처럼요. "이게 당신이 날 뽑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똑같아요. 비즈니스지.

빈스 맥맨은 싫어하겠지만 이건 착취 산업이야. 박스 오피스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뽑아내기 위해 개인의 삶 그 이상을 뽑아내 먹는거지.

자기 삶에 불만족스러운 퍼포머가 있다면 그때 해야할 일은 결정권자한테 스스로를 다르게 내보이는거에요. 그 결정권자가 "이렇게 하면 이 친구로 돈을 더 벌여들일 수 있겠군"이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그래서 회사를 나가는게 코디 로즈한테는 통했지만 모두한테 통하는건 아닙니다. 이미 여기 발을 걸쳐놨다면, 그 기회를 써먹어요 좀! 소통의 창구는 열려 있고, 계약은 이미 박혀있어요. 그니까 질러. 어떻게 당신 데리고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말하라고. 윗대가리들은 경청할 겁니다! 이건 돈을 벌려는 사업이라고요!




                                                                             


기사 주소: http://sports.nbcsports.com/2018/04/02/paul-heyman-cody-rhodes-found-himself-in-the-same-way-stone-cold-steve-austin-did-when-he-left-wcw/

위 내용 말고도 우소즈, 로먼 레인즈, 브록 레스너에 관한 언급도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꿈의 투샷" 미사와 미츠하루, 무토 케이지 숏 인터뷰 (1999년)





【夢のツーショット実現!!】 三沢光晴 & 武藤敬司 「三沢は俺の恋人」

                                                                                   



- 무토 씨 전일본 프로레스 새로운 사장이 계신데요.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무토: 이야, 선수로서도 힘든데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 사장이 되선거잖아요? 정말로, 정말로 힘든 입장에 서신거죠. 그래도 제 라이벌이니까, 제 멋대로 라이벌로 삼았지만서도 힘내줬으면 좋겠습니다.


- 미사와씨, 라이벌이라고 불렸는데요.

미사와: 아, 기쁘군요. 그렇게 생각해주셨다니.


- 미사와씨에게 있어서 무토씨는?

미사와: 역시 어릴 적부터 많이 비교가 됐었죠. 역시 오래전 부터 의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바바 씨가 돌아가셨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라는 생각을 품고 계신가요?

무토: 아, 저요? 아니 입장이 다르죠. 저는 그냥 일개 레슬러니까요. 그래도 링에서만큼은 전일본에 지지 않게끔 노력할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미사와: 아, 뭐 저도 링 위에서는 일개 레슬러니까요.


- 두 분이 맞붙는 걸 상상한 팬들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느끼시나요?

미사와: 음, 팬 분들의 바람을 이뤄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역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필요성이 있겠다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무토: 저한테는 뭐라고 해야하나, 그 티비 드라마에서 부모가 멋대로 약혼을 시켜서 한번도 보지도 못한 남자한테 사랑을 품게 되는 그런 여심 있잖아요. 그런 기분인것 같습니다.


- 미사와 씨가 그러니까 그 보지도 못한 남자인건가요?

무토: 그 남자라고 해도 레슬러로서요.


- 굉장한 러브콜이네요.

미사와: 그렇군요!

무토: 아니, 그 제가 오카마는 아니구요?

                                                                                                                                             

뭔가 이 두 사람의 미래의 궤적을 생각해보니 얄궂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스타파 알리는 어째서 "전형적인 중동 악역"을 맡지 않는가?

WWE 205 Live 소속의 슈퍼스타 무스타파 알리의 인터뷰 꼭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번역본을 올립니다. 단체를 떠나 레슬링 업계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할 기회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twitter.com/Neumannthehuman/status/982062889203838977?s=20
                                                                     


무스타파 알리는 어째서 일찍부터 극악한 “전형적인 중동인”을 연기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건 제가 16살 때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로 돌아갑니다. 만약 동남아, 중동 출신이거나 혹은 어쨌든 “중동인”으로 묘사된다면 너는 곧 나쁜 놈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죠. 그런 점을 알았기 때문에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고 저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 레슬링을 시작했을 때 전 제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루차도르 행세를 했습니다. 그니까 멕시코 레슬러로 말이죠. 그렇게 몇 년을 버텼습니다. 그러다보니 결국엔 그렇게 부킹을 잘 받지 못했고 일이 막히면서 갈팡질팡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손목 골절로 인해 반년을 쉬었죠. 그러던 동안에 친구랑 거듭 이야기를 하다 나온건 결국 이런 얘기였습니다. “너가 중동인 캐릭터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이름도 알리고 부킹도 잘 받을거야. 한번 해봐.” 결국 고민에 고민 끝에 저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고 곧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프린스 무스타파 알리”가 되었습니다. 나쁜 놈이었죠. 그리고 그게 먹혔습니다! 아, 그렇게 돌아오고 나니까 이 바닥에서 완전 핫한 선수가 되고 부킹도 쏟아지더군요. 회사에서 저한테 항공 티켓을 끊어준 것은 그게 처음이었습니다. 이미 검증된 공식이었고, 증명이 되었고, 잘 먹힌거죠. 그렇지만 전 그게 끔찍히 싫었습니다. 매 순간마다요. 나쁜 놈이 되는 것도 싫었고 그런 관념에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싫었습니다.



자주 하는 얘기입니다만, 전 제가 악역을 맡던 때 가운데서도 이 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경기 도중 무심코 관중 속에 있던 한 어린이를 봤을 때 그 어린이의 시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어린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마치 방어 태세를 취하듯 한발 뒤로 물러섰던겁니다. “아, 나는 지금 저 아이한테 나와 같은 사람은 증오하는게 마땅하다는걸 가르쳐준건가? 내가 지금 한게 바로 그런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날로 저는 그런 모습을 그만뒀습니다.


절 도와주신 신사 분께. 감사합니다

Reddit /squaredcircle에서 감동적인 글을 봐서 간략히 번역하여 올립니다.



https://www.reddit.com/r/SquaredCircle/comments/9i9adc/to_the_gentleman_who_helped_me_this_year_thank/

                                                                                                                                                                        

올해 레슬매니아 전주 금요일이었습니다. 당신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며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신사분이셨습니다.



그때 저는 오하이오 남부 쪽 월마트에 있었고 당신은 카트에 앉아있던 제 아들이 작년 크리스마스 때 할머니한테 받은 핀 밸러 티셔츠를 입고 있는걸 봤습니다. 셔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는 이번주 일요일에 레슬매니아를 보냐고 물어보셨죠. 솔직히 제가 단돈 10불도 낼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얘기하는건 말도 안되게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저는 그 소리를 입 밖에 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왠지 모르겠어요. 그걸 말해놓고서는 부끄러워 움츠러들 정도였습니다.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제 아들한테 밸러가 미즈한테 이길 것 같냐고 물어봤고, 제 아들은 한껏 신이 났습니다.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할머님 혹은 어머님? 장 보는걸 도와드리러 가셨습니다. 장 볼 목록을 부르시면 가져오시는 역할을 했죠.



20분여 지났을까요. 제가 마트에서 나가려는데 저를 붙잡으시더니 뭔가를 건네시면서 제가 결코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하셨죠. 저한테 3개월치 WWE 네트워크 구독권을 주시고는 한마디로 "재밌게 보세요(Enjoy)"라고 하시고는 제 아들한테는 밸러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씀하고 가셨습니다. 제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당신께서 아셨던 것은 그저 30대 초반의 애딸린 남자가 그깟 레슬링 PPV 하나 사볼 형편이 안되는구나라는 점 뿐이었습니다. 제 이름도, 제 상황도, 그외 어떤 것도 아시는 바가 없었죠.



아마 당신이 또 모르실 것은 제가 그때 차로 돌아가 눈물을 터뜨렸다는겁니다. 제 애가 "아빠 왜 그래요?"라고 물어볼 정도로요.



당신은 제 아내가 10개월 하고도 2주 전에 죽었고 그 이후 줄곧 아들과 함께 빠듯하게 살아왔다는 것도 모르셨을 겁니다.



이런 것 중 아무 것도 알지 못하셨습니다. 그치만 제 아들이 정말 신날만한 기회를 주셨고, 제 아들이 그렇게 활력을 찾아서 기뻐한 것은 실로 제 눈 앞의 세상을 환히 밝혀줬습니다.



전 종교가 없습니다만 이번 일로 어쩌면 당신이 제 앞에 나타나셨던 것은 뭔가 설명할수 없는 큰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습니다.



요즘 형편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대출을 받아서 학위도 다시 따려고 하구요. 또 제 아들이 좋아하고, 또 저를 좋아해주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만에 삶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있으신지 기억조차 못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쩄든 이런 친절한 낯선 사람이 있는 세상에 아직도 내가 있을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실마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디 제가 당신께 이걸 갚을 수 있거나, 혹은 최소한 이게 얼마나 저에게 뜻깊은 일이었는지 말씀이라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행복한 것처럼 당신께서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케니 오메가와 크리스 제리코가 일본에서 영예로운 타이틀을 따다

캐나다 매니토바 주의 위니펙 시 지역 신문인 위니펙 프리 프레스(Winnipeg Free Press) 2018년 6월 15일자 신문에 실린 프로레슬링 관련 기사를 번역해보았습니다. 지난 6월 9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도미니언 6.9에서 각각 IWGP 헤비급 챔피언과 IWGP 인터컨티넨털 챔피언으로 등극한 케니 오메가와 크리스 제리코의 인터뷰와 더불어 관련된 사항을 담고 있는 재밌는 기사이므로 흥미가 시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출처: https://www.winnipegfreepress.com/sports/winnipeggers-grappling-with-major-success-485727481.html



                                                                                                                                                                                                                                   

위니펙 사람들의 레슬링 성공기: 오메가와 제리코가 일본에서 영예로운 타이틀을 따다



세계 여기저기 사람들한테 위니펙 하면 뭐가 떠오르냐고 물어본다면 그 사람들이 하는 대답에 여러분은 놀랄지도 모른다.


물론 위니펙 제츠는 꽤 그럴법한 대답이다 (역주: 지역 아이스하키 팀). 일단 지난 스탠리컵 파이널 직전까지 가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으니 말이다. 물론 또 도무지 가시질 않는 뼈가 시린 겨울이 떠오른다는 대답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인기있을지 모르는 대답이 있다. 이는 바로 프로레슬링이다.


왜냐면 세계 곳곳의 팬들의 화제 중 하나는 트랜스코나 출신의 한 남자, 그리고 세인트 제임스 출신의 한 남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레슬링 단체인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신일본의 큰 연례 행사인 도미니온 6.9에서 두 위니펙 출신의 선수들은 일본 최대의 단체의 탑 타이틀 둘을 나란히 얻는데 성공했다.


본명은 타이슨 스미스인 34세 케니 오메가는 일본인 레슬링 수퍼스타 오카다 카즈치카의  인터내셔널 레슬링 그랑프리(IWGP) 헤비급 챔피언  720일 방어 기록을 70분여에 걸친 3선 2승제 경기를 거쳐 깨고 말았다.


신일본에서 비-일본인 레슬러가 톱에 오르는 것은 극히 드문일이다. 트랜스코나 고등학교 동문이며 AA 하키를 하며 자라난 오메가는 IWGP 헤비급 왕좌에 오른 몇 안 되는 외국인 선수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 몇 안되는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는 현 WWE 챔피언인 브록 레스너와 AJ 스타일스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날 챔피언이 된 외국인, 아니 위니펙 사람은 오메가만이 아니었다. 지난 20여년 간의 성공적인 WWE 활동을 뒤로 하고 올해 일본 레슬링계에 도로 나타난 크리스 제리코는 나이토 테츠야를 꺾고 신일본에서 2번째로 영예로운 타이틀인 IWGP 인터컨티넨탈 왕좌에 올랐다.



“신일본의 1,2위 챔피언 벨트는 팬, 평론가, 레슬러들 사이에서 레슬링계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타이틀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며, 크리스와 제가 이들 벨트를 땄다는 것은 결코 자주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거기다가 두 외국인, 그것도 캐나다인 중에서도 위니펙 출신이 땄다는건, 맙소사, 놀라운 일이죠.” 오메가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한 바다.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의 편집자이자 업계 최고의 레슬링 저널리스트로 여겨지는 데이브 멜처는 프리 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도시 출신의 두 외국인이 신일본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을 두고 “홀인원을 두 번 넣는 천문학적인 확률”에 비교했다.


하지만 이들 두 위니펙 사람들이 프로레슬링계의 주목을 끌었던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6개월 전 제리코와 오메가는 WWE의 레슬매니아에 상응하는 신일본의 연내 최대 흥행인 도쿄돔 레슬킹덤 12의 주역이었다.


이는 두 선수가 맞붙은 첫 번째 경기였으며, 전 레슬링계 최대의 스테이지 가운데 하나에서 이뤄진거였다. 그런데 위니펙과의 인연은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니었던 것이, 마찬가지로 위니펙 출신이자 90년대말 WWE에서 “더 재칼”이라는 매니저로 활동하기도 했던 전직 레슬러 던 칼리스가 해당 경기의 해설자를 맡았기 때문이다. 당시 IWGP US 챔피언이었던 오메가는 30분에 걸친 장렬한 No-DQ 매치 끝에 제리코를 상대로 왕좌를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위니펙 출신 3명이 4만명이 군집한 경기장에 있었던거라구요. 이건 그냥 단순히 레슬링이 아닙니다. 일본 최대의 인기 엔터테인먼트인만큼 문화를 넘나드는 정점이었던거라구요.” 6회 WWE 세계챔피언인 제리코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신일본은)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세계에서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고, 현재 WWE 목 바로 아래까지 쫓아온 상황입니다. 일본 레슬링 단체고, 그 탑스타는 일본인이지만, 그 가운데 두 명의 외국인이 도쿄돔의 메인 이벤트의 주역이었던거라구요. 수퍼볼에서 두 일본 팀이 붙은거랑 매한가지입니다. 그게 위니펙 출신 두 남자라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구요.”


대단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쿄돔에서 주역에 오르고 그 탑 타이틀을 따는건 위니펙에서 헤드라인을 따지 못했다. 제리코는 일본에서의 활약에 대한 고향에서의 무관심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걸 인정했다. 왜냐면 그는 이게 위니펙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슨 퍼레이드 같은걸 바라는건 아닙니다만, 케니랑 제가 1,2위 타이틀을 따고 도쿄돔 헤드라이닝을 했다는건 [지역신문] 스포츠면이나 엔터테인먼트면에는 충분히 실릴만한 일입니다. 무슨 포크 페스티벌이 지역에서 열려서 거기서 1등한 사람이 다음 주에 더 피라미드(역주: 위니펙의 유명한 캬바레) 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고만 해도 신문기사에 실릴거잖아요.” 세인트 제임스 출신이자 전 NHL 선수인 테드 어바인의 아들이기도 한 제리코는 이렇게 말했다.



상당한 시간을 위니펙에서 보내는 오메가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동네에서도 가끔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만, 도쿄 거리를 걸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돌아와 “그냥 평범한 사람”인 타이슨 스미스가 되는걸 좋아한다.


“제가 레슬링에 들어선건 위니펙에서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큰 무대에 서서 세계에 알려지고 싶었어요.” 오메가는 말했다. “만약 위니펙에서 유명해지는게 중요했다면 저는 하키나 컬링을 했을 겁니다. 알아봐주지 않는건 신경쓰지 않아요.”


오메가에게 더 중요한 것은 신일본의 인지도를 더욱 끌어올리는 것이다. 새로운 헤비급 챔피언이자 간체의 얼굴로서 오메가, 그리고 제리코는 일본 바깥 시장에서 단체를 새로운 지평으로 올려야할 짐을 지고 있다. 헤비급 타이틀 획득 이후로 오메가는 “전혀 쉴 시간 없이” 광고를 찍고, TV 출연을 하고, 무수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런 기회가 사각 링 바깥의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인만큼 이런 책임감을 즐긴다고 말했다.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이 책임을 짊어질 각오를 했습니다.” 2010년부터 이 회사에서 일한 오메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항상 세계 진출의 최적자는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스타일을 믿고, 온 세계 사람들한테 어필하는데 제 스타일이 먹힐거라고 믿습니다.”


과연 언제 빈스 맥맨의 WWE로 넘어갈 것이냐는 질문은 오메가가 줄곧 듣는 질문이다. 비록 그가 지금 신일본에서 버는 돈이 아마 그가 WWE에서 벌 돈보다 많을 것이고, WWE 레슬러보다 그 경기, 캐릭터, 스토리라인에 대해 더 많은 창조적 자유를 신일본에서 부여받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그가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왜 WWE에 안 가냐고 누가 묻는다면, 저의 경우엔 나중에 뒤돌아 볼 때 제가 해낸 것에 자랑스럽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저는 그게 제 스스로가 해낸 것이라는 것에 자랑스럽고 싶습니다. 다른 누가 써주거나 만들어준게 아니라, 저 자신이 해낸 것이라고요.” 지난 수년간 WWE의 제의를 몇 차례 거절한 오메가는 이렇게 말했다. “WWE는 스스로의 커리어를 마감하기에 적절한 곳입니다. 예술가로서 이루고 싶었던 것을 이루고 난 뒤, 가서 보수를 받은 다음에 [커리어를] 마무리할만한 곳 말이죠.”


47세인 제리코는 전혀 커리어를 마무리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그는 27년 커리어 가운데서도 최고의 경기를 치르고 있다. 그는 어느 시점에서는 WWE로 돌아갈 것이지만, 현재는 신일본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WWE를 꺾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입니다만,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해내기 위해선 전혀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일본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동물이죠.” 아직 IWGP 인터컨티넨탈 1차 방어전 계획은 잡히지 않는 제리코는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이것도 결국 프로레슬링이죠. 그렇지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며, 또한 보다 무척 정교하고, 거칠며, 또 여러 면에서 보다 재밌습니다. 어떤 것을 보고 싶느냐에 따라 말이죠.”


오메가는 오는 7월 7일 신일본 샌프란시스코 G1 스페셜 흥행에서 코디 로즈에 맞선 첫 번째 IWGP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을 갖는다.


(2018/06/24)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요시 타츠와 신스케 나카무라를 보며

잘 알려진 바처럼 나카무라 신스케와 훗날 "요시 타츠"로 이름을 알린 야마모토 나오후미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입단 동기입니다.


하지만 당시 격투기 붐에 함몰되어있던 신일본 운영 측에선 격투기 경험이 있던 나카무라 신스케에게 "슈퍼 루키", "선택받은 신의 아이" 같은 이름을 붙이며 푸쉬를 몰아주기로 결정합니다. 어느 정도냐면, 으레 신일본 신인 선수들이 거쳐야만 하는 "영 라이온" 단계를 거의 거치지 않고 바로 싱글 레슬러로 뛸 정도였다고 하죠.


그리고 급기야 이런 푸쉬는 2003년 나카무라 신스케가 23세의 나이로 최연소 IWGP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것으로 정점에 달합니다.


해당 경기를 보면 경기 입장 및 이후 타이틀 수여식, 퇴장 장면 등에서 줄곧 나카무라가 단체 최고의 벨트를 따는 동안 입단 동기인 타구치 류스케, 고토 히로오키, 그리고 야마모토 나오후미는 링 주변에서 잡일을 하고 수발을 들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나오후미는 나카무라 신스케의 벨트를 매주고 나카무라를 무등에 태운채 고릴라 포지션으로 돌아갈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어떤 글에 따르면 야마모토가 도미하여 WWE 트라이아웃을 받게 된 큰 계기 중 하나는 신일본에서라면 영영 타나하시나 나카무라에게 뒤쳐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야마모토는 성공적으로 WWE에 입단하여 "요시 타츠"라는 이름으로 데뷔하는데 성공합니다 ...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그 커리어는 그렇게 화려한 것은 되지 못했고, 이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요시 타츠"라는 이름으로 귀환하고 나서도  그리 성공적인 행보를 거두지는 못했구요.


반면 일찌감치 야마모토를 앞서 갔던 나카무라 신스케는 이제 "신스케 나카무라"로 WWE에 건너가 극히 성공적인 행보를 거두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레슬매니아에서 단체 메인급 타이틀 매치를 앞두고 있네요. (일본인 레슬러 중 굳이 비슷한거라도 비벼보려면 젊은 시절 NWA, WWWF, WWA 등 미국 메이저 단체의 챔피언 들이었던 루 테즈, 브루노 삼마르티노, 프레드 블래시에게 동시에 도전한 바 있던 자이언트 바바, AWA 챔피언을 지냈던 점보 츠루타 정도 밖에 없겠네요.)  결국 야마모토는 끊임없이 상상하기만 했을 그런 위치에 나카무라는 이미 훌쩍 도달해 있습니다.

신일본에서도 방출되다시피 한 요시타츠는 최근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준수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요시타츠가 신스케 나카무라의 활약과 관련한 인터뷰를 했나 봅니다.



-- CC개막과 동시에 바다 건너의 WWE의 연간최대 이벤트인 레슬매니아가 개최됩니다. 지금은 나카무라 신스케 선수가 WWE 챔프에 도전하면서 주목받고 있죠. 나카무라 선수라고 한다면 요시타츠 선수와 신일본 입문 동기죠? 

제가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서 딱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타이밍에 챔피언전에 임하고 있구나라는 건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있을 때의 일본인 선수에 대한 취급과도 다른고 어떤 의미로 제가 WWE에서 일본인이 싸우기 위한 길을 만들었다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험대였다고 할까요. 이것은 예전 WWE의 일본 사무실에서 활동하는 방식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오시타츠씨가 해왔었기 때문에 지금의 그의 포지션이 있다."라고 말했었고 그 점에서는 자랑스럽습니다. 그것이 제가 있던 시기와는 말과 인종의 벽, 일본인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죠. 저는 그것들과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 WWE 소속 선수로서 '레슬매니아'는 어떤 위치를 갖고 있습니까?

모두가 나가고 싶어하는 대회입니다. 어떤 의미로 저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죠. '레슬매니아(2010년)'에 출장해서 배틀로얄에 나가서 딱 승자로서 돌아오는 입장로를 걷고 있었으니까요. 그 장면은 장관이었습니다.

-- 요시타츠 선수가 보기에 지금의 WWE는 어떻습니까? 

제가 있을 때와는 다른 단체죠. 다른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저희들의 시대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고 어떤 선수가 톱에 오를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면 WWE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죠. 잘 들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하면 WWE에 들어갈 수 있는가."라고. 지금은 대단히 명확하고 일본에서 활약하면 좋다고. 특히 지금은 WWE도 일본인 선수를 좀 더 원하고 있으니까 도전하려는 선수는 도전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손가락을 물리기만해도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요시타츠 선수는 한번 더 도전할 기분이 있습니까?

저는 이제 됐습니다. 배가 부릅니다. 시디 신 맛이었습니다(웃음). 7년간 있었죠. 배부릅니다. 다만 물론 투모로우-네버-노우즈(tomorrow never knows)죠(웃음).



(출처 링크: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1348904)



인터뷰를 읽다보면 묘한 뉘앙스를 느끼게 됩니다. 어떤 뉘앙스를 느끼실지는 보는 분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뉘앙스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전 요시타츠에게 못내 눈길이 한번 더 가게 됩니다. 우리네 인생이 신스케 나카무라보다는 요시타츠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으니까요.


(원문: 2018/03/24, 2019/06/22 수정)

이노키 vs 김일 매치 감상


우연히 떡밥을 보고 생각이 나서 신일본 월드에서 안토니오 이노키 vs 김일 (오오키 킨타로) 간의 1974년 10월 10일 국기관에서 열린 NWF 세계 헤비급 챔피언 매치를 찾아봤습니다.

https://njpwworld.com/p/s_series_00005_1_1



  • "원폭 박치기"라는 별명처럼 자그마치 원폭 구름을 링 가운에 새겨넣은 김일 선수. 확실히 이런 기믹이면야 당연히 당시 일본에서는 엄청난 힐일 수 밖에 없었겠군요.
  • 아토믹 헤드벗이 들어가기 직전. 김일 선수가 십 수어번을 적중시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근래 몇몇 스트롱 스타일 레슬러들이 하는 것보다는 컨택을 더 요령있게 한 것처럼 보이고, 이노키도 셀링을 잘 했던 것 같습니다. 
  • 이노키를 장외로 내보내고 김일 선수가 포효하는 어필이 좋았습니다.
  • 이노키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 내리면서 승기가 뒤집힙니다. 경기 상으로는 몇 번째 헤드벗이 적중한 뒤고, 그 전에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블레이드 잡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 이노키의 반격 직전에 김일 선수는 이미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
  • 승패를 가른 것은 이노키의 피니싱 무브인 백드롭이었습니다.
  • 경기 이후. 두 선수 모두 울먹이더군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노키 선수, 경기에서 눈물을 보이는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더군요."라고 하는게 흥미로웠습니다. 어느 정도는 세그먼트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상

일단은 힐일 터임에도 불구하고 김일 선수가 일면적인 캐릭터가 아닌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공도 울리기 전에 먼저 공격을 가한게 이노키이고도 했고, 중간에 김일 선수를 두고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역도산 산하의 "으뜸가는 삼총사(三羽烏)"로 소개하는 장면도 흥미로웠습니다.

현대 경기에 비하면 훨씬 템포도 느리고 범프도 적습니다만, 링 싸이콜로지가 굉장히 좋아서 흥미진진합니다. 다만 중반 이후 헤드벗이 연발하면서 갑자기 이노키가 언더독이 되는 부분은 좀 어색했습니다.

두 선수를 함께 보니 왜 이노키가 탑페이스로 꼽혔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이노키는 확실히 카리스마가 있군요. 오히려 김일 선수는 정말 언더독에 알맞는 느낌 같습니다. (이 경기에선 약간 역전되었지만요.)

본 경기의 서브 레프리로 나왔던 미스터 타카하시의 유출본 번역된거에서 김일 선수가 스크립트를 잘 기억하여 링에서 연출하는데는 능하지 못한 순박한 성격이셨다는 걸 읽은 적이 있있던 것 같습니다. 나름 힐일텐데 경기 후반부가서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그게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이 갈 것 같기도 하네요. 물론 케이페이브가 깨진건 결국엔 이노키도 마찬가진 것 같지만요 :-)


(원문 2018/01/17 작성. 2019/06/22 수정.)


참고 링크: 프로레슬링 해체신서 5 - '궁극의 선후배 제자 대결. 유혈 파이트 끝에 눈물의 포웅' (공국진 역)


신일본의 게도(外道)가 회고하는 크리스 제리코 (중역)

WWE 및 신일본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는 슈퍼스타 크리스 제리코에 대하여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부커이자 제리코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게도(外道)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쓴 이야기를 가지고 미국의 일본 프로레스 전파자인 Chris Charlton이 영어로 번역한 것을 한국어로 중역해보았습니다.


출처: https://twitter.com/reasonjp/status/963533598761484289

                                                                                                                                 

제리코를 처음 만난건 멕시코였다. 그건 뽕쟁이 마약상이 내 머리에 따발총을 들이댄거 다음으로 내가 멕시코에서 겪은 중요한 일이었다. 나랑 자도는 친구가 없어서 항상 같은 식당에 가곤했다. 그러다 한번은 눈에 익은 또 한 녀석을 봤다. “얼라리, 저거 코라존 데 레온 아님?” 그러자 그 쪽에서도 “어이!”해서 우리는 “야 혼자 왔어? 같이 밥이나 먹자”라고 했다. 이후 우리는 일본으로 돌아와서 W*ING이랑 WAR에서 활동했다. 제리코도 울티모 드래곤을 통해서 WAR에 오게 되어서 결국 백스테이지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어릴적 부터 제리코는 언제나 “나는 올라가고 말거야”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였지만, 제리코는 레벨이 달랐다.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생각을 멈춘 적이 없었다. 제리코에게 노력하고 몸을 단련하는건 숨을 시는거나 심장박동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멈추는 때가 없었다. 난 줄곧 '저 녀석 거물이 될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WWF에서 그런 자리까지 오를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첫 번째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이 됨으로써 그는 브루노 삼마르티노와 루테즈의 유산을, 그 역사를 이어낸 것이다.



제리코는 마스크가 반반했고 몸도 좋았지만 사실 좀 작은 축이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엄청 노력했다. 일반인과는 노력의 수준이 달랐다. 솔직히 말하면 레슬링에 있어 몸과 머리, 그리고 본능에서 앞서는 건 그와 함께 일본에 왔던 랜스 스톰이었다. 하지만 제리코만큼 열심인 사람은 없었다.



끝내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진 못했지만 그는 항상 일본 미디어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최선을 다했다. 노력을 기울인 일화로 이런게 있다. 처음 오자마자 “이 단체에서 올라갈라면 뭘 해야하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즉시 가타카나를 다 외워버렸다.



그걸 눈치챈건 후유키 고도였고, 제리코가 후유키군에 라이온도로 들어오게 된건 바로 그러한 까닭이었다. 자도가 어깨 탈골로 이탈했을 때 대신해서 들어온 것이다. 하드워커였던만큼 제리코는 빠르게 팀의 리듬 그리고 우리가 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우린 태그를 시작했고, 1996년 2월 센다이에서 나는 첫 번째 인터내셔널 주니어 챔피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모두 함께 제1대 인터내셔널 주니어 태그 챔피언십 또한 쟁취했다.



2015년에 제리코가 WWE로 양국국기관에 왔을 때 그의 팟캐스트에 자도랑 출연한 적이 있다. 그 촬영 자체도 엄청 재밌었지만, 그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와, 진짜 이 녀석한테 더 배워야겠네”라고 생각했다.


(2018/02/15)

타나하시 히로시가 말하는 "스트롱 스타일의 저주" (중역)

이하 글은 <타나하시 히로시는 왜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바꿀 수 있었는가?>의 일부 부분을 어떤 미국의 블로거가 영어로 번역한 것을 재차 한국어로 중역한 것입니다.

http://yottsumepuroresu.blogspot.kr/2014/05/njpw-hiroshi-tanahashi-talks-about.html

비슷한 내용을 전에 공국진 님의 블로그에서도 본 것 같기도 합니다만, 타나하시의 글로 직접 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심심풀이 겸 번역해봤습니다. 아무쪼록 무릎 부상이 빨리 낫기를 바랍니다.


반-스트롱 스타일

난 줄곧 "프로레슬링은 관객을 가려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멕시코에서 루차 리브레를 경험하며 배운 것이다. 루차리브레를 즐기는건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복면을 쓴 레슬러들이 하늘 높이 날 때면, 흥분한 아주머니는 루도(악역)을 욕하고, 아이들은 경기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올수록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눈을 반짝이며 환호한다.

"프로레슬링은 대중 엔터테인먼트다. 이거야말로 레슬링은 본래 광경이다."

우린 고집센 늙은이가 운영하는 식당 같은게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우리 상품을 고객들 앞에 들이 밀고서는 "이게 우리가 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감사하도록 해!"라고 떠들어서는 안된다. 모든 이들이 즐거울 수 있게끔 해야한다. 하지만 일본으로 귀국했을 때 내가 본건 모두들 예전이랑 똑같이 "우린 스트롱 스타일로 간다!"고 되뇌이는 광경이었다. 누구 한 명은 피를 토할 때까지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차고, 또 그게 링 너머까지 이어져서 타이틀 매치도 그렇게 헝클어지는 광경. 그렇게 관객들은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품고 경기장을 두고보니, 나는 한때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어린이와 여성 팬들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게 바로 내가 처음으로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 바로 스트롱 스타일을 없애기로 한 것인 까닭이다. 감히 말하겠다. "스트롱 스타일은 단어일 뿐이다. 이건 오히려 저주다."




2007년 무렵 나는 도장에 걸려 있던 신일본의 창립자인 안토니오 이노키의 큰 사진을 떼버렸다. 내 핑계는 "이젠 더이상 여기 안 계시니까 떼버리는거 어때?"였다. (세간에는 "타나하시가 사진을 떼버렸다"고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걸 직접 한건 도장 감독인 코바야시 쿠니아키였다.)

나의 행동은 OB와 옛 팬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낳았다.

"감히 스트롱 스타일을 없앤다고 나댄다니."
"타나하시는 스트롱 스타일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없어!"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그 말씀하시는 '스트롱 스타일'이란게 대체 뭡니까?"

누구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얼마 전에 잡지 인터뷰를 통해서 이노키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 '스트롱 스타일'이라는게 대체 뭔가요?"

이노키가 대답했다.

"내 주변에 있던 녀석들이 지들끼리 쿵짝쿵짝하면서 만든거야."

나는 대답했다.

"이해했습니다."

프로레슬링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지 산업"이다. 이노키는 그런 대단한 붐을 만들어 내고자 "스트롱 스타일"을 제창했고, 그렇게 "이노키 신봉자"들을 만들어냈다. 나도 내 아버지도 이노키를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이노키는 [자기가 회사를 떠날 때] 스트롱 스타일도 함께 가지고 떠나야만 했다.

"신일본이야말로 최강이다"라는 이미지가 회사의 인기를 견인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미 스트롱 스타일이 그 마술적 힘을 잃은 뒤에도 사람들은 그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기한 것이다. "더이상 이렇게 갈 수는 없다."

그 인터뷰에서 이노키는 이렇게 말했다.

"너 이 자식, 내가 오래 전에 만들어놓은 파이를 언제까지 헤집고 있을거냐?"

내가 대답했다.

"제가 새로운 파이를 올려놓을 겁니다."

그러자 이노키는 웃으며 대답했다.

"맘에 드는군. 네 선배들 다들 은퇴하라고 해라!"



  이렇게 말하긴 싫지만, 이노키 이후 세대는 전부 바로 그 파이 (팬층)만을 헤집고 있었던 것이며, 새로운 파이를 창조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세대의 신일본 레슬러들은 우리 선배들은 해내지못했던 그 일, 즉 새로운 팬들을 불러모으는 일을 해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신일본 흥행에는 어린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내 또래의 부모들, 즉 어릴적에 레슬링을 즐겨봤었고 이제 여유가 생겨서 "기분 전환 겸 프로레슬링이나 보러갈가?" 생각하고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흥행에 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와가지고 잔혹한 유혈 매치나 뒷맛이 나쁜 원한 매치를 본 다음에도 아이들을 또 데리고 올까? 두 아이의 아버지로 말하건대, 나는 "이런 곳에 내 애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교육상으로 나빠. 다신 오지 않겠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즐기고, 흥분하고, 흠뻑 빠지기도 하고, 만족감이 가득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다시 오고 싶게끔 만드는 그런 새로운 세대의 레슬링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 핵심은 "탈-스트롱 스타일"이다.


(2018/01/11)